[기획] 휴머노이드 베가스 슬롯 강국 '중국'의 미래를 엿보다(7)

중국 상하이 푸동신구 ‘장장(张江)로봇밸리’에 위치한 푸리에 인텔리전스(Fourier, 傅利叶智能)는 중국을 대표하는 재활 로봇 전문기업이다. 지난 2015년 상하이교통대학 출신 엔지니어 구지에(顾捷)가 창업했다.

회사명은 프랑스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조제프 푸리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조제프 푸리에는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이란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복잡한 신호나 파동을 여러 주파수 성분으로 분해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수학적 방법론이다. 이 이론은 음성인식, 영상 처리, 신호 분석, 인공지능, 로봇 제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푸리에는 2015년 창립 이후 오로지 첨단 재활 로봇 개발 및 상용화에 집중해왔다. 급증하는 고령 인구와 재활 치료 수요에 비해 전문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주목하고, 로봇 기술을 통해 재활 치료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2016년 제 1세대 상지 재활로봇을 발표하면서 이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고 2017년에는 중국 최초로 하지 외골격 로봇 'X1'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외골격 보행 로봇 '엑소모투스(ExoMotus)', 상지 재활 로봇 '암모투스(ArmMotus)', 가상현실(VR)과 로봇 기술을 결합한 생체역학 분석 및 재활 플랫폼 ‘’메타모투스 갈릴레오(MetaMotusGalileo)‘를 꼽을 수 있다.

푸리에의 핵심 경쟁력은 고성능 액추에이터와 정밀한 힘 피드백 제어 기술에 있다. 로봇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FSA(Fourier Smart Actuator) 시리즈는 푸리에 기술력의 정수로 꼽힌다. 소형, 경량 제품이지만 강력한 토크와 정밀 제어가 가능해 재활 로봇뿐만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푸리에는 재활 로봇 개발을 통해 축적한 핵심 부품 및 제어 기술이 사람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적합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푸리에의 휴머노이드 사업 진출은 로봇이 재활 로봇 분야를 넘어, 산업 현장ㆍ물류ㆍ가사 노동 등 인간의 일상 전반에 통합되는 미래를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지에 CEO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기술을 과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세상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의료 재활 분야는 푸리에의 근간이며, ‘인간 중심의 체화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며, ”체화 지능을 병원, 지역 사회, 가정, 그리고 더 넓은 현장에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3년 안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복잡한 작업을 정교하게 수행하고, 5~10년 안에는 가정에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23년 푸리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GR-1’을 공개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작년에는 업그레이드 모델인 ‘GR-2’ 모델을 선보였다. GR-2는 키 175cm, 무게 63kg으로, 전신 53자유도(DoF)와 12 자유도의 손을 갖춰 사람 처럼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푸리에는 올해 8월 베이징에서 열린 ‘2025 세계로봇대회(WRC 2025)’에서 새로운 GRx 휴머노이드 시리즈 ‘케어봇(Care-bot)’ GR-3를 공개했다. 케어봇이란 용어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돌봄을 지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푸리에는 GR-3가 "기능보다는 사랑(Love, above all functionality)”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부드러운 촉감의 외피와 다중 모달 감정 상호작용 시스템을 탑재, ‘따뜻한 기술 동반자(warm tech companionship)’라는 개념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계적 효용성과 정서적 존재감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케어봇 GR-3는 공공의 공간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는 사회적 동반자로서 서비스 어시스턴트, 아동을 위한 안심 동반자, 노인을 위한 반응형 동반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향후 노약자의 이동 지원, 건강 모니터링, 재활 치료 등에 활용될 수 있다.

2025년 WRC에서 첫선을 보인 GR-3는 신장 165cm, 체중 71kg으로, 최대 55 자유도(DoF)를 지원한다. 컴팩트한 모듈형 구조를 채택, 핵심 센서와 컴퓨팅 유닛을 통합했다. 따뜻한 톤과 쿠션 처리, 그리고 고급 소재를 활용해 일상 속 친근함을 구현했다. 교체형 배터리 시스템과 지능형 전력 관리 기능을 지원, 실제 환경에서 24시간 운용 가능하다. 또한 푸리에의 독자적인 풀 퍼셉션 다중 모달 상호작용 시스템을 탑재해 시각, 청각, 촉각을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얼굴 인식 및 동적 추적을 통한 자연스러운 시선 교환이 가능하며, 31개의 압력 센서를 통해 실시간 터치 감지 및 감정 기반 제스처를 구현했다.

규칙 기반의 ‘빠른 반응’과 대형 언어 모델 기반의 ‘심층적 이해’를 동시에 지원, 상황에 맞는 대화와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고성능 액추에이터와 12자유도의 정밀 손을 장착해 다양한 고난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보행·앉기·달리기·에너지 절약 모드 등 다채로운 동작을 지원한다.

푸리에는 오픈소스 휴머노이드 사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올해 상반기 오픈소스 휴머노이드 로봇 ‘푸리에 N1’을 발표한 바 있다. 

푸리에는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몇 차례의 투자 라운드에 성공했다. IDG캐피털등 유수의 벤처 캐피털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았고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사우디 아람코 등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재활 로봇 시장의 리더를 넘어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의 핵심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로봇신문 취재팀은 9월 초순 장장로봇밸리에 위치한 푸리에 본사를 방문해 푸리에의 역사와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홍보관을 둘러보고, 재활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을 훈련하는 연구소도 살펴봤다. 연구소 안에선 개발자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해 제품 분류 작업을 하는 과정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다만 회사 기밀상 일부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날  취재팀을 안내한 푸리에 마케팅 팀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진출 배경과 관련해 “재활 로봇에서 휴머노이드로 사업을 ‘전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재활 로봇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해당 부품들의 성능이 휴머노이드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휴머노이드 개발에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활로봇 개발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품과 기술을 내재화한 게 휴머노이드 로봇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재활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 두 분야 모두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재활 로봇 기술에 휴머노이드를 접목하여 전체 시스템을 완성도 높게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라고 말했다.

푸리에는 상하이 자동차(上海汽车)와도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상하이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와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산업 및 실생활 환경 전반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필요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푸리에는 이달말 코엑스(COEX)에서 열리는 휴머노이드 학술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이번에 선보인 휴머노이드 ‘GR3’를 시연한다.

푸리에는 “Empowering You”라는 회사 슬로건처럼, 재활이 필요한 환자부터 산업 현장의 근로자, 그리고 미래의 모든 가정에 이르기까지, 로봇 기술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재활 로봇으로 다져진 인간 중심의 기술 철학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