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성의 플레이 슬롯 역사 이야기(73)

지난주의 보행 로봇 부분에서는 2009년의 영화 ‘아바타(Avatar)’에 나온 로봇 AMP 슈트와 2014년의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에서 외계인과 싸우는 톰 크루즈가 입고 있는 메탈 강화복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탑승형 로봇의 개발 역사를 알아보았다. 두가지 모두 이족보행 로봇을 기반으로 만든 전투 갑옷의 미래형으로 전투원의 신체 동작을 강화해 전투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탑승형인 AMP 슈트와 달리 메탈 강화복은 사람이 입는 외골격 로봇 형태였다.

사실, 탑승형 로봇에 대한 연구나 개발이 활발하지는 않은 이유중의 하나는, 외골격 로봇의 발전으로 비슷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톰 크루즈가 착용한 로봇이나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착용한 아이언맨 슈트 같은 것들은 외골격 로봇(Exoskeleton Robot)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 ISO에서는 ‘웨어러블(Wearable) 로봇’이라고 부르며 “인간에게 부착되거나 운반되어 개인 능력의 보완 또는 강화하기 위한 보조의 힘을 제공하는 로봇”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옷처럼 입을 수 있는 로봇이라는 의미의 ‘로봇 슈트’라는 용어가 좀 더 쉽게 이해되기도 하는데, ‘근력 증강 로봇’, ‘착용형 로봇’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로봇은, 모든 동작의 주체가 사람 자신으로, 팔이나 다리 등 특정 신체 부위에 착용해 더욱 강력한 근력과 지구력을 발휘하는 장치를 말한다.

탑승형 플레이 슬롯과 마찬가지로 외골격 플레이 슬롯의 초기 연구도 1960년대 GE에서 이루어졌다. 1968년에 개발된 최초의 외골격 플레이 슬롯 하디맨(Hardiman)은 자체 무게가 700Kg이었으며 팔뚝, 허리 그리고 발 부분에 플레이 슬롯과 사람을 연결하는 장치가 있었다. 한쪽 팔로 350kg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도 있었지만, 이동에서의 안정성이 떨어져서, 1971년에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실제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하디맨의 아이디어가 실제 구현된 것은 2009년 미국의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공개한 ‘헐크(HULC, Human Universal Load Carrier)’로, 이를 착용하면 90kg의 군장을 메고 시속 16km로 산악지대를 달릴 수 있었다. 내장된 마이크로 컴퓨터, 센서, 배터리 그리고 유압시스템으로 작동되는 헐크는 자체의 무게와 추가적인 군장의 하중을 사람이 아닌 로봇의 다리를 통해 지면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헐크를 착용한 군인에게는 추가적인 체력 부담 없이 전체적인 근력을 강화할 수 있다.

록히드 마틴은 헐크의 작업 범위 및 부하 하중을 늘리는 등 군사용 외골격 로봇으로 더욱 개량해 나갔지만, 동작의 민첩성이 떨어지고 배터리 지속 시간의 한계가 있어 전력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한편으로 록히드 마틴은 헐크를 활용해 무거운 화기를 지탱하는 외골격 로봇으로 ‘포티스(Fortis)’를 개발했는데, 산업적 수요가 커지면서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산업용으로 개량하기도 했다.   

사실 헐크는 DARPA가 2000년부터 지원하고 버클리 대학에서 개발해 2004년에 시연을 보인 외골격 로봇 ‘블릭스(Bleex, Berkeley Lower Extremity EXoskeleton)’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블릭스를 발전시킨 모델인 헐크의 라이선스가 2009년 록히드 마틴에 판매되어 개량 설계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블릭스를 개발한 카제루니(Homayoon Kazerooni) 교수는 현재의 엑소바이오닉스(Ekso Bionics)로 변경된 회사 버클리 엑소웍스(Berkeley ExoWorks)를 2005년에 설립했다. 초기에는 헐크의 기술을 활용해 척수 마비 환자들을 위한 재활치료용 외골격 로봇인 ‘엑소(Ekso)’ 등을 공급하며 의료용 외골격 로봇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상장기업이 된 2014년 이후부터는 더욱 다양한 의료용 외골격 로봇과 함께 다양한 산업용 외골격 로봇도 공개하고 있다.

DARPA의 지원을 받았던 또 다른 군사용 외골격 로봇으로 ‘XOS’도 있었다. 원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쥬라기 공원 공룡 같은 테마파크 로봇을 주로 개발하던 사코스 리서치(Sarcos Research)는 2001년 DARPA의 자금지원을 받아 외골격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 미국 방산업체인 레이시온(Raytheon)이 인수해, 시제품을 2008년에 선보였는데, 이동성의 문제로 미국방부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2010년에는 영화 ‘아이언맨 2’의 공개 일정에 맞춰 선보이며, 아이언맨 슈트라는 별명을 획득한 ‘XOS 2’를 공개했는데, 이전 모델보다 반으로 줄어든 전력 사용과 훨씬 가벼운 무게로 착용자가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민첩하게 동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XOS 2도 전력화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레이시온으로부터 다시 분할된 사코스는 최근 회사명도 바꾸고 사업 방향도 로봇 응용 소프트웨어로 전환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많은 국가들이 군사용 외골격 로봇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라트닉-3(Ratnik-3) 전투 시스템을 공개하고, 일부 실전 배치도 했다고 하는데, 라트닉-3의 구성품으로 외골격 로봇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2011년부터 군사용 착용 플레이 슬롯을 개발하고 있는데, 험지적응형 하지 근력증강 플레이 슬롯, 복합임무용 착용형 근력증강 플레이 슬롯 등의 기술 개발 사업을 국방과학연구소, LIG넥스원 등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지뢰탐지 장비 지지 장치와 연계된 무릎 근력 보조슈트는 시험단계인 것으로 밝혔는데, 험지적응형 등의 근력 증강 플레이 슬롯의 실전 활용은 203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골격 플레이 슬롯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미국방부가 군인의 근력을 향상시키는데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신경 및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근력이 약화된 노인들을 위한 치료와 재활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외골격 로봇은 일본 사이버다인(Cyberdyne)의 ‘할(HAL, Hybrid Assistive Limb)’이다. 1990년부터 외골격 로봇연구를 해온 일본 츠쿠바 대학의 산카이 요시유키(山海嘉之)교수가 설립한 사이버다인과 츠쿠바 대학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2009년에 처음 공개한 할은 22Kg의 무게이지만 근력을 10배이상 키워 주기 때문에, 거동이 힘든 사람의 신체적 기능을 지원할 수 있었다. 다리 기능만 제공하는 HAL 3과 팔, 다리 및 몸통의 전신 외골격인 HAL 5의 두종류가 있는데, 특별한 점은 다리 근육에 부착된 센서가 뇌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생체 신호를 감지해 로봇의 보행을 도와주며 보행 능력과 안정성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임상실험을 오랜 기간 진행해 온 할은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신체기능의 개선과 재생을 촉진하는 효과도 입증했다.       

또 다른 의료, 재활용 외골격 로봇으로 이스라엘 리워크로보틱스(ReWalk Robotics)의 ‘리워크(ReWalk)’는, 2012년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이를 착용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국내 업체로는 회사명이 엔젤로보틱스로 바뀐 SG로보틱스가 대표적이며 의료용은 물론 산업용 그리고 방산용까지 공급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엔젤로보틱스의 ‘워크온(WalkOn)’은 스위스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16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이래, 2020년, 2024년 2회 연속으로 웨어러블 로봇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사이배슬론(Cybathlon)은 'cyborg'와 'athlon'의 합성어로 신체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웨어러블 로봇같은 생체 공학 보조장치를 통해 경기를 하는 대회이다.

또한 외골격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의 산업용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제조공정에서 작업자의 부상과 위험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웨어러블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포드는 2017년부터 자동차 조립라인에 엑소바이오닉스의 웨어러블 로봇 ‘엑소베스트(Eksovest)’를 도입했고, BMW, 아우디, 크라이슬러 등도 현장 테스트를 끝냈거나 도입을 완료했다.

필자가 일본 로보덱스​(RoboDex)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에도 수십개의 업체가 작업 현장의 업무를 지원하거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용 외골격 로봇을 전시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만큼 산업용 외골격 로봇의 관심과 개발 열기는 높은 편이다.

국내 업체들로는 LG전자가 IFA 2018 전시회에서 웨어러블 로봇 ‘LG 클로이 수트봇(LG CLOi SuitBot)’을 공개했고, 현대차그룹은 의자형 착용로봇 ‘H-CEX’와 윗보기 작업용 착용로봇 ‘H-VEX’를 개발했는데, 개량형 로봇은 북미 공장 등에 실제 적용하고 있다.

탑승형 플레이 슬롯은 그 개발 업체나 개발 사례 그리고 실제 상용화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외골격 플레이 슬롯의 경우는 대부분의 산업용 플레이 슬롯 업체가 개발하거나 공급하고 있으며, 전문 외골격 플레이 슬롯 업체도 수십개가 시장에 진입해 있는 상태여서, 지금까지 설명한 업체는 일부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문병성 moonux@gmail.com>

필자인 문병성은 금성산전, 한국휴렛패커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에어로플렉스 등 자동화업계와 통신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으며, 최근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역사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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