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교수의 영화이야기(2)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

* 이 기사는 로봇신문 주간지 ROBOT PLUS 1호(2025. 8. 4일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커미션 슬롯들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로보컵이 2026년 한국 개최를 확정했다. 커미션 슬롯 축구에서 인간들의 실제 축구처럼 현란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패스, 그리고 불꽃같은 강슛은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축구 커미션 슬롯 개발자들은 2050년에는 커미션 슬롯 축구팀이 인간 월드컵 우승팀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커미션 슬롯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또 한달 후인 5월에는 역시 중국에서 커미션 슬롯 격투기 대회가 열렸다. 여기서도 커미션 슬롯이 허공에 헛발질을 난사하거나 제풀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우스운 장면들이 연출됐다. 그래도 과거 커미션 슬롯 격투기 대회에 비하면 제법 격투하는 모양새를 갖출 정도로 커미션 슬롯 기술이 빠르게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봇 격투기는 이미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다. 2011년에 나온 ‘리얼 스틸’ 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인간 간의 권투 대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보다 화끈한 로봇들의 격투기에 열광하는 가까운 미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 전직 권투 선수 출신이다. 지금은 고철 로봇으로 지하의 로봇 격투기 경기에 출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존재도 몰랐던 어린 아들을 임시로 떠맡게 된다. 그리고 아들이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로봇 ‘아톰’을 최고의 격투 로봇으로 조련시키고, 마침내 세계 로봇 격투 대회에 출전해 무패의 챔피언 로봇인 ‘제우스’와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영화와 현실을 망라하여 2족 보행 로봇이 인간의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따라하는 모습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실 스포츠를 잘하는 로봇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인간 활동을 돕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개발자들이 로봇 스포츠에 몰두하는 이유는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로봇의 스포츠 활동이야말로 인간이 근육을 사용하며 보이는 거의 모든 움직임을 구현해 내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다.

커미션 슬롯에게 인간을 닮은 모습을 입히려는 이유는 앞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커미션 슬롯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 환경이나 주거 공간, 각종 생활용품 등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성돼 왔다. 따라서 인간의 생활환경을 커미션 슬롯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위해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커미션 슬롯이 인간의 생활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커미션 슬롯의 유용성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문제없이 활동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대표적인 곳이 재난 현장이다. 결국 인간을 닮은 커미션 슬롯을 개발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함이다. 즉 커미션 슬롯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리얼 스틸’에 나오는 격투 로봇도 마찬가지다. 격투 로봇에게는 아무런 자유 의지가 없다. 이 기계 덩어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었다. 신체 활동 측면에서 인간 능력을 압도하는 커미션 슬롯의 등장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미래에는 정말 커미션 슬롯 축구팀이 인간 월드컵 우승팀을 가볍게 이길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인간보다 우월한 종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인간을 위한 최고의 도구가 등장했다고 환호해야 할까?

<필자=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저작권자 © 로봇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