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성의 넷 엔트 슬롯 역사 이야기(82)

당시 최고 기술의 휴머노이드로 알려진 아틀라스를 보유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현대차 그룹이 인수한 2020년이나, 일론 머스크가 자체 AI 휴머노이드인 옵티머스의 계획을 공개한 2021년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는 일반 대중에게는 호기심 대상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채 4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은 생성형 AI와 함께 모든 첨단기술과 향후 최고 성장산업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관심 대상이 된 듯하다.
사실 테슬라가 시제품 로봇을 공개했던 2022년 말에도 이 정도의 돌풍이 몰아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쉽지 않았는데, 2024년초에 이르러서는 BMW와 벤츠도 공장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술계와 대중의 관심이 불타오르게 했다. 여기에 생성형 AI와 결합된 피규어 01이나 아폴로 로봇의 시연 동영상, 그리고 자사 AI 컨퍼런스에서 휴머노이드들을 배경으로 등장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기름을 더 끼얹는 역할을 했다.
앞서 설명했지만, 2021년 머스크가 옵티머스의 계획을 공개할 때도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아 보였고, 그래서 2022년 시제품을 공개하자 오히려 기술계에서는 실망스러워 하며 대학원생들이 만든 수준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최고였던 아틀라스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유럽에서 개발되고 있던 휴머노이드, 심지어 10여년전에 개발된 올 뉴 아시모 등의 다른 넷 엔트 슬롯들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연된 옵티머스는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면, 당시 왜 다른 기업은 휴머노이드를 개발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실제, 소니의 아시모, 토요타의 파트너, 카이스트의 휴보와 같이, 이전에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었던 휴머노이드가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보스턴 다이나믹스나 일본, 중국, 유럽 등지에서 소수이지만, 여전히 휴머노이드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업과 연구팀은 있었다. 그런데, 상당한 수준까지 구현했던 많은 연구팀은 왜 더 이상 휴머노이드를 개발하지 않는 것일까? 그럼에도 테슬라를 비롯한 소수의 기업과 연구팀은 왜 여전히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려 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갖는지 부터 살펴봐야 할 듯하다.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아주 오래된 욕망이었다.
문헌상 최초의 휴머노이드로 알려진 청동거인 탈로스는 이미 기원전 4세기경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1920년대에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카펠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R.U.R.)’에 등장하는 로봇도 휴머노이드였으며, 로봇이 등장하는 최초의 영화인 ‘메트로폴리스’에 등장하는 로봇 마리아 역시 휴머노이드였다.
현재에도 일반적으로 넷 엔트 슬롯이라고 하면, 넷 엔트 슬롯 태권 브이나 터미네이터를 상상하듯이, 사람들의 생각속에 넷 엔트 슬롯은 기본적으로 휴머노이드 형태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겐, 인간이 만든 인간을 닮은 인공물, 특히 그 능력이 아주 강화된 인공물이, 인간이 하기 힘든 일, 어려운 일 그리고 위험한 일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열망이 강했고, 그것이 휴머노이드에 대한 추구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옵티머스가 추구하는 방향도, 사람같이 생겼지만 공장에서 대신 일을 해주는 ‘R.U.R’의 로봇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장에서 활용하는 것만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인간 위주의 현실 환경에서 사람처럼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범용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로봇으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경제성이 확보된다는 측면도 있는데, 최근의 테슬라 동영상에서도 옵티머스의 시연이 공장에서 가정으로 확장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가사의 많은 부분을 지원하는 넷 엔트 슬롯, 그래서 1가구 1넷 엔트 슬롯이라는 꿈은 제조현장에 투입된 넷 엔트 슬롯 수와는 비교되지 못할 만큼 상업적으로 큰 시장이며 경제성 확보의 중요한 교두보일 것이다.
오랜 기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열망해 온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이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산업용 넷 엔트 슬롯과 모바일 넷 엔트 슬롯은 해가 갈수록 사용량이 급증하며, 최근에는 일상에서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휴머노이드는 그렇지 않다. 사람과 교감하며, 사람을 대신해 줄 것 같았던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에 대해서는 오히려 회의론이 부상하기도 했다. 그것은, 비단 넷 엔트 슬롯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떤 것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술적 토대가 이루어지고, 적정한 비용으로 생산될 수 있어야 하며, 실질적인 유용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의 관심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휴머노이드는 하드웨어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충분한 기술적 완성도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복잡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개발과 고도화 과정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적정한 비용으로 생산되기가 어려워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했다. 그럼에도 개발된 휴머노이드는 명확한 활용처나 사업적 모델이 없어 현실적인 유용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내구성, 예측 불가능한 안전 문제,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도 장벽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로봇 개발은, 굳이 사람의 모습을 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사람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그래서 산업용 로봇이나 모바일 로봇, 서비스로봇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산업용 로봇의 아버지이자 서비스 로봇 시장의 선구자인 조셉 엥겔버거는 로봇을 걷게 만들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휴머노이드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왜 휴머노이드 개발을 했었고, 또 개발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휴머노이드 연구 개발 목적으로 현실적 활용, 기술력 과시, 순수 학문적 접근 그리고 기타 목적의 4가지로 구분해 본다. 물론 이것 만으로는 모든 휴머노이드의 개발 목적을 설명할 수도 없고, 또 대부분은 어느 정도 복합적인 목적을 갖고 개발된다는 점을 고려해 주기 바란다.
인간이 하기 어렵고, 위험한 일을 대신해 주기 바라는 넷 엔트 슬롯에 대한 열망은 지속되었지만, 기능적 측면에서 개발된 넷 엔트 슬롯의 도움은 여전히 현실 세계에서 아주 제한적이다. 그것은 산악지나 사고 잔해, 계단과 같은 비정형화된 현실 환경에서 이동하며, 손이나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작업들이 산업용 넷 엔트 슬롯이나 모바일 넷 엔트 슬롯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상황에 대응하기에 가장 적합한 로봇은 인간과 같은 동작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최선의 솔루션으로 보인다. 휴머노이드를 현실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 중 대표적인 예는 재난 환경에서의 활용이다. 재난 환경에서 지원, 구조 그리고 복구를 위한 로봇은 모바일 로봇이나 다족 로봇을 통해 구현하기도 하지만 휴머노이드 형태가 가장 활용성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런 목적의 로봇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DARPA 로보틱스 챌린지(DRC)가 있었고, 그래서 개발된 로봇으로 카이스트의 DRC-휴보나 IIT의 워크맨(Walkman)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들이 있다.
현실적 활용의 다른 예로, 인간에게 직접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실험을 넷 엔트 슬롯으로 대신해 주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경우다. 이런 용도로 개발된 넷 엔트 슬롯이 1988년의 매니(Manny)나 아틀라스의 이전 모델인 펫맨(Petman)이 있는데, 이 휴머노이드들은 화학전에서 사용되는 군인들의 방호복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다른 예는 산업 현장이나 일상에서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해 주는 넷 엔트 슬롯을 개발하려는 접근으로,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사회적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넷 엔트 슬롯은 대체로 힘이 세고 작업성이 좋게 개발되어야 하는데, 실제 활용사례는 없지만, 일본 AIST의 HRP 시리즈나 스페인 팔로보틱스의 탈로스(Talos) 등이 이런 목적으로 개발되는 넷 엔트 슬롯이다. 이런 현실적 활용 목적의 넷 엔트 슬롯들은 대부분 연구 단계로, 한 두대 실험용으로 제작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 상용화되어 현실 적용에 성공한 휴머노이드는 아직 없었다.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두번째의 목적으로 기업이나 연구소의 기술력 과시를 위한 것이 있다.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이 되기 위해서는 이족 보행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는 안정성 제어와 모션 제어라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손가락 제어 기술이나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해 반응하는 지능형 기술까지 접목되어야 하니,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의 개발은 그야말로 기업이나 연구소의 복합적인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이렇게 개발된 넷 엔트 슬롯들은 특별한 활용 용도를 갖기보다는 시연용으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카이스트의 휴보, 혼다의 아시모 등이 그 예이다.
세번째 목적으로는 순수한 학문적 접근을 들 수 있는데, 초기의 휴머노이드 개발이 대체적으로 이 범주 안에 든다. 최초의 휴머노이드로 인정되는 와세다 대학의 와봇이나 개발 플랫폼으로 제공되었던 초기의 아틀라스가 이에 해당된다. 유럽의 휴머노이드 연구도 인간 동작의 구현보다는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위한 연구용으로 개발되어 오고 있는데, 알데바란의 나오(Nao)나, 로드니 브룩스의 코그(Cog), IIT의 아이컵(iCub) 등이 그 예이다. 그 외에도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교육용이나 오락용으로 개발되는 경우들이 그 중의 한가지이다.
이런 다양한 목적으로 휴머노이드를 연구하고 개발해 왔지만, 아직 상업적으로 성공한 휴머노이드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휴머노이드의 개발은 개발 목적과 활용 방안의 뚜렷한 설정 없이는 단지 홍보효과에 그치는 단발성 프로젝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술적 한계와 높은 개발 비용을 극복할 탄탄한 사업적 모델의 수립 없이는 상용화에 다다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이후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고, 많은 기업이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며 투자자들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번째 이유는 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기술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특히 딥러닝 기반의 생성형 AI와 강화학습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에 복잡하고 어려운 모델링을 통해 넷 엔트 슬롯을 구현하던 방식에서, 넷 엔트 슬롯이 인간의 행동 데이터를 스스로 모방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어 동작 구현의 기술적 장벽을 크게 낮춰줬다.
또한 멀티모달(Multi Modal) 센싱과 결합된 AI는 넷 엔트 슬롯이 주변 환경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하며, 이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는 넷 엔트 슬롯이 좀더 정형적인 산업환경이나 비정형적인 생활 환경에서도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했다. 또 자연어 처리 기술의 발전과 챗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AI는 기계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의 향상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넷 엔트 슬롯이 단순 명령 수행을 넘어 인간과 협력하고, 심지어 감정을 인식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번째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와 시장진입 경쟁을 들 수 있다. 이런 투자와 경쟁을 촉발하는 선봉의 깃발을 날린 것은 일론 머스크다. 로봇의 시연으로는 실망스러웠던 ‘테슬라 AI 데이 2022’에서 머스크는 기술적으로 자사의 전기차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과 2만불대라는 가격 그리고 자사 제조 현장에 적용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휴머노이드의 확산을 막고 있던 기술과 비용 그리고 활용성이라는 큰 세가지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초기에 자사의 공장과 물류 센터에 투입한다는 구체적인 사업 모델은 테슬라의 막대한 자본력, 최첨단 AI 및 배터리 기술, 그리고 대량 생산 능력을 고려해 볼 때 휴머노이드의 상업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대폭 증폭시켜주었다.
특히 머스크가 제시한 2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목표 가격은 휴머노이드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이들의 시장 보고서와 예측 전망치는 로봇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은 테슬라의 직접적인 경쟁사인 BMW나 벤츠의 경쟁 심리를 자극했으며, 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과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도 휴머노이드 개발과 활용의 경쟁에 참여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또한 그간 지속되어 온 상황이지만, 기술 발전으로 인한 부품의 소형화와 가격 하락도 들 수 있다. 비약적인 연산력 향상으로 과거 중대형으로 가능했던 제어부의 소형화가 이루어졌고, 신기술 적용으로 센서나 액추에이터들이 더 효율적이고 강력해지면서 소형화되었다. 이로 인해 과거에 휴머노이드의 몸체에 모두 장착하기 어려웠던 기능의 부품을 모두 장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강력해지고 소형화된 부품들은 가격도 많이 하락해서 상업적 생산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줬다.
2025년 중반 현재, 여전히 배터리 기술, 안전 문제, 사회적 수용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남아있지만, 휴머노이드 넷 엔트 슬롯은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실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잠재력을 가진 핵심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필자:문병성 moonux@gmail.com>
필자인 문병성은 금성산전, 한국휴렛패커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에어로플렉스 등 자동화업계와 통신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으며, 최근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역사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