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성의 슬롯 파라다이스 역사 이야기(70)

2009년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Avatar)’에서 원주민인 나비족을 공격할 때, 쿼리치 대령과 그의 부대가 타고 나온 로봇 ‘AMP(Amplified Mobility Platform) 슈트’는 숲으로 빽빽한 판도라 행성에서 바퀴형이나 캐터필러형의 공격 무기보다 훨씬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족보행 로봇에 팔이 장착되어 자원 채굴을 하고, 공격용으로도 사용된 AMP 슈트는 로봇 내의 제어 장갑과 풋 페달을 통해 로봇 팔과 보행을 제어하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주무기인 기관포와 함께 전투용 검인 슈트 나이프를 휘두르기도 했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에서도 외계인과 싸우는 톰 크루즈가 입고 있는 메탈 강화복의 주무기는 기관포였고, 근접 전투에서는 거대한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두 경우 모두 이족보행 로봇을 기반으로 만든 전투 갑옷의 미래형이다. 전투원의 신체 동작을 강화하여 전투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하나는 사람이 올라타는 탑승형 로봇 형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이 입는 외골격 로봇 형태라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런 로봇들은 영화에서나 등장한 것 같지만,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왔고, 개발되기도 실제 사용되기도 했다. 탑승형이나 외골격 모두 기본적으로는 보행 로봇의 변형 또는 응용 개발인데, 이번 회에서는 탑승형 로봇의 사례에 대해서, 다음회에서는 외골격 로봇의 개발 역사에 대해서 알아본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AMP 슈트와 같이 이족 로봇 중에 사람이 직접 올라타서 제어하는 로봇이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탑승형 로봇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 ‘로봇 태권 V’나 ‘마징가 Z’, 영화 ‘퍼시픽 림’의 ‘예거’ 로봇의 경우에도 조종사가 로봇의 머리 부분에 탑승해서 제어하는, 탑승형 로봇의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거대한 로봇의 제작은 기술적으로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일 것이고, 실제의 탑승형 로봇은 AMP 슈트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 다이스 선장이 타고 다니는 녹색의 로봇 ‘로보노이드’와 더욱 많이 닮아 있다.
최초의 탑승형 로봇에 대한 연구는 1962년 GE의 페디퓰레이트(Pedipulator)로 거슬러 올라 간다. 3.5미터 높이의 두개의 다리 위에 장착된 구조물 안에서 조작자가 레버를 조정하며, 걷는 동작 형태로 구조물을 움직여 보는 장치였는데, 실제 걸을 수는 없었고, 안정성 문제로 프로젝트가 중지되기도 했다.
페디퓰레이터의 연구를 바탕으로 미 육군은 바퀴 달린 트럭이 진입할 수 없는 험난한 지형에서 장비나 폭탄 등의 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네발 달린 트럭을 요구했고, GE는 1970년에 ‘걷는 트럭(Walking Truck)’으로 불린 사족보행 탑승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AMP슈트와 달리 팔 대신 네 개의 다리 장착한 형태였지만, 조종사의 두 팔은 로봇의 앞다리를, 조종사의 다리는 로봇의 뒷다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고, 외부에서 조종사의 모습을 볼 수 있어, AMP 슈트와 닮은 점이 꽤 있다.
걷는 트럭은 연료 소모 문제 등 현장 적용에 문제가 있어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후반 세계적 농기계 회사 존 디어가 개발한 산악지대 벌목용의 걷는 트랙터 팀버잭(Walking Tractor Timberjack)이 그 모습을 계승했다.
실제 탑승형 로봇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보행 로봇 개발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일본 와세다 대학이 1966년부터 연구해온 보행 로봇 WL 시리즈로서, 2003년에 WL-15와 WL-16을 선보였다. 이전까지 보행 로봇의 다리 메커니즘을 직렬형 구조로 만든 것에 비해서, WL-15와 WL-16은 다리를 스튜어트 플랫폼 기반의 병렬 구조를 채택해, 다리 부분의 기계적 강성을 높이고, 출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 로봇들은 사람이 올라타서 이동할 수 있는 장애인용 보조 보행구나, 물건을 올려 놓고 경사지, 계단 등을 이동할 수 있는 다목적 이동 수단으로 개발되었다. 특히 WL-16 시리즈들은 2족 보행 로봇의 하체에 의자를 올려두어 사람이 올라앉아 로봇의 보행 동작을 제어하는 시연들을 선보였다.
2005년에는 아이치 엑스포에서 도요타가 파트너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 로봇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탑승형 로봇 ‘아이풋(i-Foot)’도 같이 선보였다. 계란과 같은 상부 구조물에 사람이 앉은 채 탑승해 조이스틱으로 조정하면, 직렬 구조의 두 다리가 전진, 후진, 회전을 하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있는 이족보행 탑승형 로봇이었다. 혹시 로봇이 넘어지더라도 탑승한 조작자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탑승부를 계란과 같은 구조로 만든 아이풋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휠체어 등의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도요타가 밝혔지만, 실제 상용화되거나 사용된 사례는 없다.
도요타보다는 늦었지만 같은 해인 2005년 겨울, 카이스트도 탑승형 로봇 ‘FX-1’을 개발했다. 부산 APEC 정상회담 행사장에서 첫 선을 보인 FX-1는 휴보의 상체를 제거하고 하체를 키워서 사람이 직접 탑승할 수 있는 로봇으로, 산업용, 군사용으로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대형 탑승형 이족 로봇으로 3.4미터 높이의 ‘랜드워커(Land Walker)’가 2006년 일본의 농기계제조업체에 의해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행하는 듯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이 로봇은 이족보행 로봇이 아닌, 다리의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이었다.
비슷한 구조의 로봇은 2023년에도 소개되었다. 츠바메 인더스트리가 공개한 ARCHAX는 높이 4.5미터의 4족 로봇으로 상체에는 양팔과 손가락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건설이나 재해 복구에 사용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조종석은 로봇의 가슴부위에 있었는데, 외부에 부착된 9개의 카메라로 조종석 모니터에 실시간 영상을 전송해 조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만 이 로봇도 랜드워커와 마찬가지로 4개의 다리 하단에 장착된 바퀴로 이동하는, 그래서 보행 로봇은 아니었다.
WL-16, 아이풋, FX-1은 다리만 있어서 주로 이동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좀더 대형으로 제작되고, AMP 슈트와 같이 로봇 팔이 달려있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탑승형 로봇도 공개되었다. 2017년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직접 탑승해보고 트윗을 남기면서 유명해졌던 한국미래기술의 ‘메소드-2’가 그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AMP 슈트와 외형은 물론 높이와 무게까지도 비슷하게 만든 메소드-2는 휴보 개발팀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만든 로봇이기도 하다.
보행 기술이나 로봇 팔 제어 등, 부분 부분으로 보면 혁신적인 로봇은 아니지만, 1.5톤이 넘어가는 대형 보행 로봇으로 세계 최초이며, 이를 구동할 수 있는 강력한 출력의 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메소드-2 역시 기술적으로 완전한 로봇은 아니었지만, 이런 로봇이 잘 개발된다면 재난 현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기대가 컸다. 그러나 메소드-2의 개발자금을 지원하던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불법적인 행위로 2018년 체포되면서 추가 개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필자:문병성 moonux@gmail.com>
필자인 문병성은 금성산전, 한국휴렛패커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에어로플렉스 등 자동화업계와 통신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으며, 최근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역사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