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그리스 신화에 ‘테세우스의 배’로 알려진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러 갈 때 탔다는 배다. 이후 아테네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식된 헌 널빤지를 하나씩 떼어내고 새 목재로 교체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 배를 보존했다고 한다. 훗날 철학자들은 이 배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 배의 모든 부품이 교체되었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더 나아가 교체 과정에서 떼어낸 원래의 부품들을 모아 다시 배를 조립한다면, 과연 무엇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 철학적 사고실험은 오늘날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하면서 전혀 새로운 질문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만약 죽음을 맞이한 특정 개인의 의식을 인공지능에 옮겨 놓는다면, 그 의식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아가 의식이 입력된 인공지능이 로봇의 신체와 결합한다면, 그 개인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4년에 개봉한 영화 ‘트랜센던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윌 캐스터는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은 물론 자각 능력까지 갖춘 고도의 인공지능을 완성 직전에 둔 천재 과학자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 비밀 단체의 총격으로 그는 죽음을 맞을 위기에 처한다. 윌은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료 과학자인 에벌린의 도움으로 자신의 뇌를 슈퍼컴퓨터에 업로드한다. 그 결과 윌은 비록 육체는 죽음을 맞았지만 의식은 인공지능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
인공지능이 된 윌은 자신의 의식을 인터넷과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에 연결시켜 막대한 정보와 권력을 손에 넣는다. 뿐만 아니라 나노 기술을 활용해 병들고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자신의 의식을 그들의 육체에 연결해 조종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장한다. 나아가 나노 입자를 비와 바람에 실어 지구 전체에 퍼뜨리려는 시도까지 감행한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한 정부는 인공지능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고, 에벌린은 사랑하는 존재와 인류의 안전 사이에서 깊은 갈등에 빠진다.
스스로 인공지능이 되어 초월적 능력을 행사하는 윌의 모습은 전지전능한 신과 다르지 않다. 그는 병든 자를 치유하고 파괴된 시설을 순식간에 복원하는 기적을 행한다. 그의 능력에 매혹된 추종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모여 조직화된 집단을 이룬다. 윌은 이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고, 마침내 이미 죽어 없어진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부활에 이른다. 이 과정은 하나의 종교가 탄생하는 서사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근대 이후 대립해 온 과학과 종교가 다시 하나로 결합하는 순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트랜센던스’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죽음을 넘어 신의 자리에 도달하려는 시도가 과연 정당한지 묻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을 꿈꾼다. 그런데 마빈 민스키, 한스 모라벡,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세계적인 인공지능 학자들은 의식의 업로드가 영생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나’라는 정체성이 육체가 아니라 두뇌 속에 형성된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이원론적 관점을 따른다. 그리고 육체는 유한하지만 의식은 무한하며, 의식의 본질은 결국 정보의 패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백업해 놓듯이, 개인의 두뇌에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정보의 패턴을 복제해 그대로 컴퓨터에 업로드하면 육체의 죽음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의식은 계속 살아 존재하므로 영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살아 있는 의식은 컴퓨터 서버 속에서 활동하거나 로봇의 신체로 다시 다운로드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업로드는 단순한 데이터 백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만약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는 내가 의식을 업로드한다면, 나란 존재는 둘로 나뉘는 것일까. 업로드 이후 육체 속의 나와 컴퓨터 속의 나는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며 서로 다른 존재로 분화될 텐데, 그중 어느 쪽이 진짜 나인가. 더 나아가 의식을 기계에 이식해 영생불멸의 존재가 된 존재를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테세우스의 배가 우리에게 던졌던 질문은 이제 인간 자신을 향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가. 그리고 무엇이 진짜 당신인가. 기술이 던지는 질문은 때로 이처럼 섬뜩하다. 아무래도 인간이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시도는 기술 논리만으로 쉽게 결정할 일은 결코 아닌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