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성의 로아 슬롯 역사 이야기(72)

1980년을 전후로 미국과 일본에서 로아 슬롯에 의한 인명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1980년대부터 논의가 되어온 안전규정은 2000년대가 되어서 국제표준화기구 ISO의 표준으로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로아 슬롯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 조치의 가장 기본은 격리형 방호장치인 펜스를 설치하는 것이다. 또한 펜스의 높이나 바닥에 고정되는 견고성에 대한 기준은 물론 관리를 위한 문을 설하는 것에도 여러 추가 안전 규정들도 마련되어 있다. 그렇게 산업 현장에 설치된 산업용 로아 슬롯들은 항상 금속성 보호 펜스안에서 사람들과 격리되어 배치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최근 산업현장에서는 안전펜스 없이 로봇과 작업자가 한 공간에 뒤섞여 작업을 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협동로봇이다. 현재 산업계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협동로봇은 2000년대의 산업용 로봇 경량화 기술의 발전, 다양한 센서의 발전과 더불어 산업 안전에 대한 또다른 접근 방식으로 인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협동로봇으로 최초 상용화된 것은 2008년 12월 상용화 된 덴마크 유니버설 로봇(Universal Robots)의 가반 하중 5Kg의 ‘UR5’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협동로봇이라는 용어와 그에 대한 초기 연구는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의 연구는 현재 사용하는 용어와 동일한 ‘Collaborative Robot’ 또는 ‘Cobo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오늘날의 협동로봇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그러나 구조나 목적상 현재의 협동로봇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1990년대 미국의 직업안전건강관리청(OSH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은 자동차 산업계와 제조 업계의 인체공학적 안전 문제에 우려를 표하고, 특히 자동차 산업계의 리더로서 GM에게 문제 해결책에 대해 강력한 요구를 했다. 인체공학적 문제는 작업자의 장단기 부상을 초래하고, 이는 곧 노동력 손실과 의료비의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1961년 유니메이트를 처음 도입하여 산업계의 혁신을 이끌었던 GM은 보호 펜스 없이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안전한 로아 슬롯을 만들기 위해 노스웨스턴 대학과 버클리 대학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작업자의 신체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로아 슬롯과 장치들을 1996년에 개발했는데, 이런 장치들을 총칭하여 IAD(Intelligent Assist Devices, 지능형 보조 장치)라고 불렀다.

이런 IAD가 당시에 개발된 협동로봇으로 현재의 다관절 형태의 협동로봇과는 다른 형태였다. 이것들은 작업자의 조작으로 다른 무거운 부품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 센서와 모터를 사용한 지능형 호이스트 시스템 등으로 작업자가 훨씬 적은 육체 노동으로 일상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것이 협동로봇의 첫 번째 형태로, 이때 인간과 상호 작용을 강조하기 위해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 또는 코봇(Cobot)이라는 용어를 도입했으며, 첫 특허가 1997년에 출원되었고, 1999년에 특허 승인이 났다.      

한편,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EU)은 로봇 제조업체, 산업계와 함께 중소기업의 생산 자동화 문제에 주목했다. 2005년에는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공동으로 지원하는 ‘연구 및 기술 개발을 위한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P)’ 6차 프로그램의 하나로 ‘제조 분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럽 로봇 이니셔티브(The European Robot Initiative for Strengthening the Competitiveness of SMEs in Manufacturing)’를 4년간의 연구 기간을 목표로 출범시켰다.

줄인 말로 ‘SMERobot’으로도 불린, 중소기업을 위한 새로운 로봇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는 유럽의 주요 로봇 제조업체와 연구기관, 그리고 학계가 총 참가했다. 이는 쉽게 배울 수 있는 직관적인 명령의 로봇, 인간과 작업장을 공유하기 위한 안전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로봇, 기존 제조 환경에 신속하게 통합할 수 있는 로봇의 세 가지 로봇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되어 공개된 로봇들이 앞서 설명한 독일 항공우주연구소의 LBR 3를 개선한 쿠카의 LBR 4, ABB의 IRB 120과 같은 경량 로봇이었으며,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산업용 로봇, 즉 협동로봇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덴마크의 에스벤 오스터가드(Esben Østergaard)는 두 명의 대학원 동료와 함께 유니버설로봇(UR, Universal Robots)을 2005년에 설립했다. 그는 남덴마크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로봇 공학 박사과정을 밟던 2003년에 이미, 유연성이 있고 프로그래밍이 쉬운 로봇 개발의 필요성을 느껴,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2007년 첫번째 프로토 타입의 로봇 팔을 테스트하고는, 로봇이 사람과 충돌할 때 자동으로 작동을 중지해서 어떤 인체 손상도 유발하지 않게 하는 안전제어 기능을 장착한 로봇 ‘UR5’를 개발했다. 2008년 12월에 UR5는 처음으로 덴마크 부품 업체 리나텍스(Linatex)에 납품되었고, CNC 기계에 부품 로딩 자동화를 위해 설치되었다.

그렇게,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즉 보호 펜스 없이 로봇과 작업자가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하고, 전문 프로그래머 없이 작업자가 터치 스크린에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직접 프로그램하는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로써 유니버설로봇은 협동로봇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유니버설로봇의 성공에 힘입어, 2012년 리씽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의 ‘박스터(Baxster)’, 2013년 쿠카의 ‘LBR 이바(iiwa)’, 2015년 ABB의 ‘유미(YuMi)’ 등 다양한 협동로봇이 출시되었다. 이런 로봇의 공급업체들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 가능한 경량 로봇의 마케팅 차원에서 이들 로봇을 협동로봇으로 불렀고, 협동로봇은 이후 산업용 로봇의 중요한 한 부류가 되었다.

ISO 표준에서는 협동로봇을 “동일한 공간에서 사람과 직접적 상호작용을 위해서 설계된 로봇”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협동로봇이라는 용어는 기계적 구조나 사양에 의한 분류라기 보다는 사람과 로봇이 작업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협업이 가능한 로봇을 기능적 차원에서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래서 협동로봇은 다양한 형태로 설계될 수 있지만, 현재 공급되는 대부분의 협동로봇은 수직다관절 로봇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협동로봇을 줄여서 ‘코봇(CoBot)’으로 많이 부르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협력(協力)로봇’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협업로봇, 보조로봇 등으로도 불리다가, 2016년 1월 로봇산업협회의 요구에 의해 ‘협동로봇’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었다.

안전 확보의 의무에 관한 표준 ISO 10218-2에서는 로봇과의 협동작업을 4가지로 구분해 두었다. 사람과 로봇의 동선이 겹칠 경우, 작업자가 협동작업공간에 진입하기 전에 로봇을 자동으로 정지토록 하는 ‘안전정격감시정지(SRS)’ 모드와 협동작업공간에서 로봇은 작업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물리적 압력에 따라서 만 움직이는 ‘핸드가이딩(HGC)’ 모드가 있다. 또 로봇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필요한 안전거리가 확보된 경우에만 로봇이 움직이는 ‘속도/이격감시(SSM)’ 모드와 로봇과 사람이 접촉하는 경우 로봇은 제한된 크기의 정적, 동적 힘 만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동력-힘 제한(PFL)’ 모드도 있다. 이런 각각의 방식은 방호 대책도 각각 다 다르게 수립되어야 한다. 현재 협동로봇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로봇은 PFL 모드이며, SRS모드는 표준 개정안의 협동작업 분류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로아 슬롯 활용에서 산업 현장 안전화를 추구하며 경량 로아 슬롯으로 개발된 협동 로아 슬롯은 인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특징 외에도 빠른 설치와 작은 설치 공간, 프로그래밍과 유지 관리가 쉽고, 상대적으로 낮은 자본 투자 대비 높은 투자회수율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로아 슬롯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은 운용방식은 기존에 산업용 로아 슬롯의 도입이 쉽지 않았던 분야에도 로아 슬롯을 쉽게 도입하고 설치 및 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산업용 로아 슬롯 시장에서 협동로아 슬롯의 비중이 점차 커지게 할 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용 로아 슬롯 도입의 증가세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수치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2017년 전체 산업용 로아 슬롯의 2.8%정도를 차지하던 협동 로아 슬롯은 2022년 10%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성장률이 상당히 높아, 빠른 성장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협동 로아 슬롯의 급격한 확산은 앞으로도 계속될 지속적인 추세로 보고 있으며, 비제조업 분야의 활용 범위 확산도 이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문병성 moonux@gmail.com>

필자인 문병성은 금성산전, 한국휴렛패커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에어로플렉스 등 자동화업계와 통신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으며, 최근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역사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저작권자 © 로봇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