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연구 논문 발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취리히) 연구팀이 혈관을 타고 이동해 혈전 부위에서 정확히 약물을 방출할 수 있는 모래알 크기의 마이크로 로봇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1200만 명 이상이 뇌졸중으로 쓰러진다고 한다. 생존하더라도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치료법은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을 녹이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약물이 전신으로 퍼지며 내출혈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많은 신약이 개발 과정에서 탈락하는 이유는 약물이 전신을 돌아다니며 불필요한 부위에도 작용해 부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은 약물을 방출하는 캡슐 형태의 제품이다. 생체 분해 가능한 젤(Gel) 소재의 껍질이 약물을 감싸고 있으며, 캡슐 내부에는 자성을 띠는 산화철 나노입자가 포함돼 있다.
환자 주변에는 지름 20~25cm 크기의 전자기 코일 6개가 배치되며, 이 코일들이 생성한 자기장을 조합해 캡슐을 밀거나 끌어당겨 이동을 제어한다. 의료진은 풀레이스테이션의 컨트롤러 처럼 생긴 조작 장치를 이용해 외부에서 자기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로봇을 원하는 위치로 정밀하게 유도할 수 있다. 마이크로 로봇은 혈류를 거슬러 초당 20cm 이상의 속도로 역주행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의사들이 엑스레이로 로봇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탄탈럼(Tantalum) 나노입자를 조영제로 활용했다. 로봇이 목표 지점인 혈전에 도달하면, 외부에서 고주파 자기장을 쏘아 나노입자를 가열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로 젤 껍질이 녹으면서 내장된 혈전 용해제가 방출되어 막힌 혈관을 뚫는다.
브래들리 넬슨(Bradley Nelson) 교수는 “뇌혈관은 매우 미세하기 때문에 로봇의 크기를 크게 줄이면서도 충분한 자기 제어력을 확보하는 것이 기술적인 도전 과제였다”면서 “재료공학과 로봇공학의 완벽한 시너지를 통해 수년간의 난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마이크로 로봇을 목표 지점까지 정밀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2단계 전략’을 수립했다. 먼저 카테터를 이용해 마이크로 로봇을 혈액이나 뇌척수액에 주입한 뒤, 자기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활용해 로봇을 목표 지점으로 유도했다. 사용된 카테터는 상용 제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내부에는 유연한 폴리머 그리퍼에 연결된 가이드와이어가 탑재돼 있다. 가이드와이어를 밀어내면 폴리머 그리퍼가 벌어지며 마이크로 로봇을 방출하도록 설계됐다.
연구팀은 실제 혈관과 유사한 실리콘 모델 시뮬레이션을 거쳐, 돼지와 양을 대상으로 동물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논문 주요 저자인 파비안 랜더스(Fabian Landers) 박사는 “우리의 목표는 실험실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술실에서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Clinically ready magnetic microrobots for targeted therapies)
한편, 연구팀은 이번 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고정밀 혈관 실리콘 모델을 스핀오프 기업인 ‘스위스 바스큘라(Swiss Vascular)’를 통해 상용화하여, 의료진의 수술 훈련용으로 보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승일 기자 robot3@irobotnews.com
